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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도시 원주 이야기!!

자유게시판 게시물입니다.

군사 도시 원주 이야기!!

박춘근 · 2014-06-06 · 조회 1396


 

 

박두희 앵커

 

서울에 사는 대학 동기 친구 중에 원주가 고향인 친구다

학교 다닐 때도 늘 아나운서 맨트만 날리고 다니든 친구 였는데

요즘은 방바닥에 지도만 그리고 있자니 미칠것 같아 원주 여행을 하자고 제안이 왔다,

 

고향을 떠나 온지도 오래지만 그래도 초,중,고를 원주에서 다니고 조상 선산도 원주에 있는데

진작 고향 원주를 여행삼아 바라보기는 이번이 처음 이란다

해서 회원모집을 했는데 기껏 친구 조웅씨와 내가 뽑혔다고 치고 원주 백배 즐기기 여행 계획을 한거다,

 

그놈의 여행이 스케줄 날자 잡기가 그렇게도 어려운강 수십번의 그룹 카톡으로

천신만고 끝에 날짜를 잡고는 마침내가 인터불고 호텔 회원권이 있어 원주 인터불고 호텔에다

방을 두개 예약하고는 생판 낯선곳 원주로, 아니 아들녀석이 군생활 한곳이라 기쁜 맘으로 다녀 왔다,

 

원주시는 대충 한반도의 중심부이자, 강원도의 남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강원도에서 가장 인구가

많단다(약 33만군사 도시로 군부대, 신병교육대등이 많으며 동기 동문들 중에도  군 장성출신도

줄줄이 많고 ㅇㅇㅇ참총장,ㅇㅇㅇ,사령관 ㅇㅇㅇ장군등 알도 못하는 이름을 줄줄이 읊어 된다 

 

원주에는 또 그 유명한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말년에 터를 잡고 대하 소설 토지를 완성하였고

그의 사위 김지하 선생도 살고 있단다

 

 

구룡사

 

절 이름 만 딱 봐도 알듯이 대충 치악산 기슭에 말 그대로 9 마리의 용이 승천 했다는 곳에

신라 시대 고승이 사찰를 창건하고 대중의 그락 왕생과 나라의 안녕을 틀림 없이 기원 했든곳,

그런데 막상 와서보니 九龍寺(아홉마리 용) 가 아니라 龜龍寺(거북바위용) 이라니  헷갈리니

따지지 말고 넘어가자! 

 

 

 

구룡사 대웅전 앞에서 3 룡의 포스로!

 

 

 

멀리서 본 치악산 구룡사

 

 

 

 

사천왕문이 웅장하다

 

 

 

 

구룡사 전경, 몇년전에 불타서 복원 하였다고 하는데 아직 공사 중인 곳도 있다

 

 

 

약수터에서 목도 식히고 손도 씻고

 

    

 

 

관음사

 

세상에 이런일에 소개된 108 대염주로 더 유명한 조그만한 사찰

토담도 일주문도 없는 세상과 담을 쌓지 않는, 그냥 열려 있는 맘 편한 이름 없는 절이 관음사다

 

 

 

 

세상에서 제일 큰 통일 대 108염주는 동아줄로 역겨 있고 그중에서도 제일 큰 염주 3개를

완성하고는 1개는 일본 그리고 2개는 관음사에 안치되여 있는데 그중 한개는 통일이 되면

북한 묘향산 보현사에 보낼거란다

 

108염주를 만들기 위해 재일 한국인3세 임종구씨라는 분이 수령 2000년된 무쇠 같이 단단한

부빙가 나무라는 것을  일본 나고야 항에서 구입하여 만들었다는데 한개의 무개가 약 200kg

지름이 약 75센치 크기로 한번씩 만저 보면 그 규모에 놀라지 않을수 없다,

대단하다, 뭔가 기발한 발상과 노력에 신의 한수로 자리메김하고도 남는 도다!!

 

통일 기원 108 대염주다

 

 

 

그중에 유별나게 큰 염주 3개중  1개는 일본에 있고 이곳에 2개가 있는데 통일되면 북한

묘향산 보현사로 옮긴단다.

 

 

 

가는데 마다 한판씩 찍는다

 

 

 

108 대염주를 만든 재일교포 3세 임종구씨.                 염주에 새긴 글들

 

     

 

 

무량수전이 뭣일꼬?   죽은 영혼들를 모신곳            박앵커의 다음코스 쪼가리 보다 들켰다!

 

      

 

 

엥??   박 앵커 원주 가이드 여행계획서 쪼가리 보다  들켜 버렸네!!   찍지 마세요!!

 

 

 

토지 문학관

 

박경리 선생이 토지를 완성한 곳인 옛집을 보전하고 토지 문학관과 조그만 한 공원을 조성하였다

토지는 전 6부 16권으로 갑오년 동학농민혁명과 갑오 개혁 등이 지나 1897년 한가위 부터 광복의

기쁨을 맛본  1945년8월15일 까지 한국근대사의 시대적 배경으로 경남 하동 평사리 최차판댁에서

시작으로 무대가 전국적으로 무대가 이어지드니 지리산, 서울, 간도, 러시아,일본, 부산,진주 등에

걸치는 광활한 국내외적 공간을 배경으로  무려 26년동안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으로 집필한

대하 장편 소설이다 , 한 문학가의 집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토지문학 공원 기념관

 

 

전시실 입구 박경리 선생의 사진

 

 

 

옛집 마당 텃밭에 선생의 생전 동상 옆에서 함께 찍다

 

 

 

아이들은 치마폭에 앉아 찍도록 크게 내어 주셨다                     아담한 옛집 모습이다

 

      

 

 

15km 떨어진곳에 김지하 선생이 운영하는 토지 문화관, 많은 문인들의 습작 공간으로 꾸며 져 있단다 

 

        

 

 

선생은 말년에 죽음을 예견 했든가?

유언 같은 종시를 남겼는데 여기 소개 한다

 

      " 모진 세월은 가고

        아 아 편안 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 한 것을

        남기고 갈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 하다"

 

당신도 과연 남기고 갈 것은 있는가요???

 

 

 단양 도담삼봉

 

 

도담 삼봉

 

단양팔경 중의 하나로, 남한강 상류 푸른 강물 한가운데 3개의 기암으로 이루어진 섬 봉우리다

조선왕조의 개국 공신인 정도전(鄭道傳)이 이곳 중앙봉에 정자를 짓고 이따금 찾아와서

경치를 구경하고 풍월을 읊었다고 하며,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고 한 것도 도담삼봉에 연유한

것이라고 한다. 충주댐의 완성으로 약 1/3이 물에 잠기게 되었단다,

 

단양팔경중 하나인 충주호

 

 

 

 

도담삼봉 입구 설치물들

      

 

     

 

 

삼봉 정도전(鄭道傳)

 

충신인가 역적인가??

권간( 權奸  권력과 세력을 가진 간사한 신하)  인가? 혁명가 인가?

살아서 6년 죽어서 600년을 조선을 다스린 남자,

 

정도전의 평가는 다양하다

그러나 조선 왕조의 개국, 조선의 체제와 기틀를 다지는데 결정적 역화를 한것 만은 틀림 없다

그는 시서에 능한 유학자이며 군병법에도 밝았고 오늘날 토지 공개념 수준의 전재 개혁안과

사병혁파, 노비해방책을 내 놓을 만큼 민본 사상에 강한 인물이다

 

조선의 법전이라 할수 있는 경국대전을 만들었으며 민본을 주창하며 나라의 근본은 백성이요

신하가 다스리는 나라 만들려는 혁명가로써 결국 왕권을 주창하는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하지만

훗날 이방원(태종)은 아이러니 하게도 삼봉의 정책을 이어가기도 했단다

  

이참에 드라마 정도전을 열심히 보며 역사 공부 도 해보자

 

삼봉 정도전의 동상이 도담 삼봉을 굽이 보며 앉아 있다